
핵 억제 마지막 장치, 뉴스타트도 사라졌다
1972년 이후 반세기 동안 유지돼 온 미·러 간 핵군축 체계가 무너졌다.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를 제도적으로 제한해왔던 ‘뉴스타트(New START)’ 조약이 2월 5일부로 공식 종료됐다. 이 조약은 핵탄두 1,550기, 핵 투발 수단 700기로 양국의 핵전력을 제한하고, 연 18회의 상호 사찰을 의무화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만료로 그 마지막 제도적 울타리가 사라졌다. 양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각각 5,000기 이상으로 추산되며, 이제는 법적 제한 없이 증강이 가능해졌다. 냉전 이후 이룬 군축 성과가 단숨에 무력화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핵전력 균형은 다시 불확실성의 시대로 들어섰다.
후속 협정 없는 상황, 미·러·중 갈등이 변수
뉴스타트 종료 이후에도 후속 협정 논의는 전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포함한 다자간 협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핵전력 규모 차이를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러시아는 기존 양자 조약 연장을 선호하지만, 미국은 이를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협상 테이블 자체가 마련되지 못한 채, 삼국의 이해관계만 충돌하고 있다. 각국 모두 자기 입장을 고수하면서 핵무기 감축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로 인해 전 세계는 새로운 형태의 핵 군비 경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외교가 아닌 무기 경쟁이 다시 안보의 중심에 들어선 셈이다.

중국의 핵 전력 증강, 미국의 우려 키운다
미국이 중국의 협상 참여를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중국의 핵무기 증강 속도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공식 핵탄두 보유량은 수백 기 수준이지만, 미국 정보기관들은 조만간 1,000기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기존 뉴스타트 체제가 오히려 자국의 전력 증강을 제약한다고 판단했다. 미국 내부에서는 “중국이 제한 없는 증강을 하는데, 미국만 묶여 있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미·러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협정 참여는 부당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각국의 논리는 엇갈리고, 협상은 출발선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핵 억제 아닌 경쟁, 세계는 악순환으로 간다
전문가들은 뉴스타트 종료가 단순히 두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다. 조약이 무력화되면 각국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불신은 증폭되고, 핵전력 경쟁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소련 출신 핵 협상가는 “협정이 없으면 신뢰는 무너지고, 행동은 더 공격적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미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뉴스타트 이행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바 있다. 상황이 이대로 진행되면, 핵무기 개발을 고려하는 국가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군축 실패가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새로운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길 수도 없는 경쟁 시작됐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 상원의원 에드 마키는 “뉴스타트가 끝나면 미국도, 러시아도, 중국도 핵을 더 만들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 경쟁은 누구도 이길 수 없고,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싸움”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냉전 종식 이후 전 세계 핵탄두 수는 7만 기에서 1만 2천여 기 수준으로 줄었다. 그러나 그 감소의 중심에 있던 뉴스타트와 같은 제도들이 사라지면서, 이제는 반대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지금 세계는 전략적 억제가 아닌, 전략적 증강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국제 질서를 다시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