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년 만의 최고지도자 공백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면서 이란은 1989년 이후 처음으로 최고지도자 공백 상태에 직면했다. 단순한 지도자 교체가 아니라,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정점이 사라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훨씬 크다.
하메네이는 37년 동안 정치·군사·사법 전반을 통제해온 절대 권력이었다. 그의 부재는 곧 권력 균형의 붕괴를 의미하며, 이란 내부의 모든 권력 축이 재정렬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라리자니, 후계 1순위로 급부상
혼란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이다. 뉴욕타임스는 하메네이가 유고 시 라리자니를 최우선 적임자로 지명했다고 보도했다.
라리자니는 1958년생으로 테헤란대 철학 교수 출신이다. 수학과 전산학을 전공했고, 독일 철학자 칸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슬람혁명수비대 지휘관을 거쳐 2008년부터 2020년까지 12년간 국회의장을 지내며 입법부를 이끌었다. 4개 부처 장관직을 경험한 그는 입법·행정·군을 모두 거친 보기 드문 인물이다.
최근 수년간 그는 러시아, 중국, 걸프 국가들과의 주요 협상에서 하메네이의 대리자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반정부 시위 국면에서 강경 대응을 주도하며 최고지도자의 신뢰를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직자 아닌 지도자, 헌법의 벽
문제는 헌법이다. 이란 헌법은 최고지도자 유고 시 대통령, 대법원장, 헌법수호위원회 소속 고위 성직자로 구성된 3인 위원회가 임시 권한을 행사하도록 규정한다. 무엇보다 역대 최고지도자가 모두 아야톨라급 성직자였다는 점에서 라리자니의 승계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성직자가 아닌 인물이 최고지도자에 오르는 것은 체제의 전통과 정통성을 흔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가 공식 최고지도자가 되기보다는 과도기 통치 기구의 중심 인물이나 실질적 국정 운영자로 기능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갈리바프와 강경 보수 진영의 변수
라리자니의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혁명수비대 출신으로 군 내부 기반이 두텁다. 그는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와 가까운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강경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다.
과거 라리자니는 핵합의 비준 과정에서 비교적 실용적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보수 진영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권력 승계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IRGC 단결이 체제 운명 좌우
이란의 향후 진로를 가를 결정적 변수는 이슬람혁명수비대의 단결 여부다. 혁명수비대가 단일 대오를 유지한다면 지도부 일부가 사망했더라도 기존 권력 구조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재편될 수 있다.
반대로 내부 파벌 간 균열이 발생할 경우 장기 권력 투쟁이나 권력 분산 구조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현재까지는 군과 혁명수비대가 공개적으로 분열 조짐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은 이란 체제에 최대 시험대가 되고 있다. 성직자가 아닌 후계자 가능성, 군부의 선택, 강경 보수 진영의 움직임이 맞물리며 이란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37년간 유지된 권력 구조가 어떤 형태로 재편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